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의 내용과 지난 참여자 후기 (4)

안녕하세요????
「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의 이야기를
지난 포스팅에 이어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이번 글에서도 프로그램의 이론적 내용과 함께
참여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작성한 자서전을 통해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마음이 통하는 대화 기술 익히기
한국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그래서 서양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말, 곧 '눈치'라는 용어가 있다.
그리고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도 많은 국민이라고 본다.
그런데 유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겸양과 억제가 강조된 나머지 자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에 서투르다. 감사의 마음을 깊숙이 덮어두고 나중에 표현하거나 생략한다. 칭찬하는 것에도 인색한 편이다.
자기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강압적으로 억누르는 상대에게 불쾌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참고 인내하는 수가 많다. 그러다가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면 걷잡을 수 없이 과격한 언행으로 분노를 폭발한다.
원만하고 기분 좋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을 품위 있게 지키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는 것도 기술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은 연습함으로써 체득될 수 있다.
이 세미나 시간에는
자기를 알리는 대화 기법(시리즈-칭찬하기, 부탁하기, 거절하기, 비평하기, 비평·비난에 대응하기)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대화 - 공명 관계의 대화 기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자기를 알리고 좋은 관계를 맺는 기술 - 칭찬하기
모든 사람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내 쪽에서 자녀나 배우자를 칭찬해 주면 그들의 자존감은 올라가고, 그들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 서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진다.
칭찬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1) 진심으로 칭찬하라
사실에 근거하여 과장되지 않는 표현으로 칭찬하라
"네가 최고야!"라고 하기보다는
"넌 수학 분야에서 아주 뛰어나구나"
2) 그 자리에서 즉시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3) 간결하게 하라
4) 기분 좋은 신체 언어로 칭찬하라
5) 결과보다 과정에 대하여 칭찬하라
"내 아들이 100점 맞았구나"라고 말하기보다는
"내 아들이 열심히 공부한 성과가 나타났구나"라고 하라
6) 평가적인 표현보다 감성적인 표현을 하라
"와 선생님은 80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는군요" 라고 말하기 보다는
"와 선생님은 아주 넓은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사시는군요"
7) 가끔씩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칭찬하라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칭찬을 진심으로 받아들여라
"와 선생님 옷이 너무 멋지고 품위 있네요" 라고 말 하니까,
"뭘요, 이거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에요"라고 묵살하는 사람이 있다.
그보다는 "감사합니다. 사실 이 옷은 길가에서 값싸게 샀지만, 나도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곧잘 입고 다닙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다.
또 상대방과 칭찬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의 안목도 대단하시네요. 사람들이 제 옷을 보고 선생님처럼 멋지다고들 해요"라고 말대꾸하는 것이 좋다.
2. 공명 관계의 대화기술
◆ 공명-공감하기(메아리 기법)의 순서
화자와 청자를 정하고 대화를 나눈다.
청자는 ①~⑦ 단계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① 공명-공감한다.
② 추임새를 보낸다.
③ 감정을 탐색한다.
④ 요약-공감한다.
⑤ 생각과 문제의 근원을 탐색한다.
⑥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게 한다.
⑦ 마무리
프로그램의 이론적 내용을 살펴보는 것에서
이제 실제 참여자의 이야기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지난 학기 참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한 편의 자서전을 완성했습니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의 시간을 만나보겠습니다.
믿고 견디는 자, 나를 응원한다. - 이복순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집의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지자 아버지는 나에게 대학 등록금을 지원할 수 없으니 대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대로 기어코 대학에 들어갔고, 처음부터 끝까지 학비를 벌어 가면서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 때 아주 조그마한 미술 학원을 열었는데, 내가 워낙 아이들을 예뻐했기에 고사리 같은 아이들이 나를 엄청 좋아하였고 학부모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나는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때였다. 그때 마침 부근의 유치원장이 나를 불러 유치원 원감이 되어달라고 초대하였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젊은 나이(25-26세)에 겁도 없이 나는 20여 명 가량의 유치원 교사를 지도하는 원감이 되었다. 그리고 매일 60명이 넘는 7세 유아반을 맡아 두 명의 보조교사와 함께 재미있게 수업을 하였다. M원장은 나에게 항상 친절하였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유하였다. 그 당시 내가 나가던 유치원의 길 건너편에 있는 개포동에는 유치원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그쪽 동네의 아이들이 전부 내 유치원으로 왔다. 원아가 넘쳐나서 200여명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M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급하게 외국에 가 있게 되었으니,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 유치원 운영을 잘 부탁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전화 한 통화 이후로 원장은 자취를 감추었고 다음날부터 빚쟁이들(대부분 M원장의 동창들)이 몰려와 유치원장실을 점거하였다. M원장은 유치원생들의 입학금과 등록금을 몽땅 챙겨가지고 잠적해버렸기 때문에 유치원을 운영할 예산이 한 푼도 없었다. 교사들과 운전기사들은 수개월간 밀린 월급을 달라고 나에게 아우성이었고, 거래처들도 밀린 대금을 지급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런 시달림 속에 고통받는 나를 보고 나의 부모와 형제들은 유치원 원감직을 그만두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정작 내가 사직을 하려고 하자, 아무것도 모르고 유치원에 와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망울들이 떠올랐다. 막상 이 유치원 문을 닫으면 2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고 실망할 것인가? 유별나게 책임감이 강하고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집쟁이의 기질이 나에게서 또 발동하였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결국 '인내하며 버티자'로 결정하였다.
M 원장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도 없는 시간들 속에서 하루하루는 전쟁터 같았다. 드디어 빚쟁이들이 기물을 파괴하는 폭력행위가 계속되자 어쩔 수 없이 유치원을 닫아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다정했던 교사들 마저 몇몇은 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배신할 때는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유치원 교사들의 승급시험 시기는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원감과 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 자격시험을 치르고, 또 교육용 창작물도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데,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여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 안에 특별 미술 공예반을 개설했다. 또 철마다 소풍 행사를 개최했다. 그런 활동으로 창출한 수익금을 전부 모아 교사들과 운전기사들에게 밀린 월급을 주었고, 승급시험 준비도 지원했다. 그렇게 하여 1년이 지나서 아이들도 무사히 졸업시켰다. 또 교사들을 다독여 열심히 운영한 덕분에 시교육위원회로 부터 우수 유치원으로 지목되어 교육감상도 받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M원장이 나타나서 사과를 하였다. 우리 모두가 견뎌낸 결과로 큰 산은 넘은 것 같았기에 밉지가 않았다. 그리고 인생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에 대한 평판이 자자해지자 다른 유치원에서 나를 스카우트하였고 나는 그곳에서도 젊은 나이에 원감으로 봉직하였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나는 다시 미술 학원을 열었다. 나의 학원은 언제나 학부모들로 북적였고, 순조롭게 번창하였기에 50대까지 운영하였다. 그리고 60대부터는 교회로 와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당시의 유치원장과 유치원 교사들과 나는 지금까지도 40년이 넘도록 우정을 계속하고 지낸다.
이제 와서 젊은 시절을 돌이켜본다. 미술 학원이나 유치원이나, 내가 하는 일마다 잘 되는 편인데, 왜 그럴까?
첫째로, 무엇보다 내가 어린이를 사랑하고 진심에서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일 거다.
둘째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와 교인들에게 베푸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먹이고 좋은 것을 보면 사가지고 와서 아낌없이 그들에게 선물한다. 매일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나 쇼핑하는 것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넉넉하였다. 6.25시절부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동네 주변에 많았을 때 나의 부모님은 그들을 정성껏 보살폈다. 특별히 어머니는 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느라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들이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던 모습, 부모님도 기뻐하며 답례 받던 모습, 어린 나도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면서 덩달아 기뻐하던 일상이 나의 DNA 속에 깊이 새겨져 있나 보다.
셋째, 가족과 친척들은 나를 예쁘고 귀엽다고 하면서 항상 칭찬하셨다. 비록 어머님 아버님이 말로는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나를 예뻐해주고 신뢰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부모님이 올바른 도리라고 강조하시는 것은 꼭꼭 지키는 모범생 딸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 자기 확신이 아주 강했다.
이런 긍정적인 자기 믿음과 사람들에게 다가가 베푸는 가치관이 있었기에 그처럼 어려웠던 시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25-6세의 풋내기 유치원 원감 시절에 왜 내 잘못도 아닌데 말할 수 없는 박해와 핍박을 받아야 했던가? 당시 나는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기도에 매달렸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어느 날 예수님은 나를 만나주셨고 나에게 이심전심으로 말씀하셨다. "너의 교만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내면에는 남들이 모르는 교만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좀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도록 시련의 시간을 주신 것이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깨어 기도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고, 옳게 살고 있으며, 나는 어디서나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기 확신이 있는데, 그것이 내면에서 행여나 '교만'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 성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칭찬받는 자리가 생기면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령 내 잘못도 없는데 남편이나 누군가가 나를 매도할 때마다 내가 엎드려 기도하면, 주님은 '나의 교만'을 매번 지적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무튼 초년생 유치원 원감 시절에 배운 것은 이것이다.
* 옳은 일은 굳게 믿고 견디며 밀고 가는 실천력
* 사람들을 분별하는 안목
* 겸손과 감사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를 응원하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네 번의 이야기를 통해
이론을 살펴보고, 참여자의 이야기를 만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가진 의미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학기,
또 다른 삶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와 함께
나의 이야기를 돌아볼 참여자를 기다립니다.

2026년 7월. 공명-공감의 대화 전문가 수료식 일부
* 프로그램 신청을 원하시면 아래 사진을 클릭하여 정보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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