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의 내용과 지난 참여자 후기 (3)

안녕하세요.
오늘 포스팅에서도 홍경자심리상담센터에서 진행되는 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의
이론적 배경과 함께, 참여자가 직접 작성한 자서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진솔한 관계 맺기의 기술
모든 대화가 참만남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고 다가가기를 시도한다.
둘째 적절한 자기 공개를 시도한다.
1) 상대에게 다가가기 - 관심의 표명
이완 자세, 시선 응시, 호감적 몸짓, 경청의 자세
질문하기- 열린 질문(open-ended question / how&what)을 많이 하라
맞장구치기- 긍정적 피드백(칭찬)
♣ 대화하기 연습
대화 시도: 눈-말-따라하기
☞ 상대방의 눈을 3~5초 응시 → 말 걸기(개방형 질문) → 따라하기 (반영적 경청, 그 뒤에 추임새: [예] "아, 그렇군요. 좀 더 얘기해 주세요. 그래서요." → 공감하기 ([예] "그래서 흐뭇했겠네요. 속이 상했군요" 등)
2) 자기공개의 단계(점진적으로)
① 표면적 수준에서 말을 건넨다.
② 사실적 정보 교환- [예] 좋은 한식집, 뉴스, 기사
③ 자신의 가치관, 취미 나누기
④ 참된 친구 사귀기- 고민 나누기, 도와주기
*문제점: 자의식과 수줍음, 의견 차이 다루기
♣ 자기 공개(self-disclosure)의 이점
자기 공개 행위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며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자존감과 진실성을 나타낸다. - (I am O.K. You are O.K.)의 관계
자기 공개는 자랑이나 교만이 아니다.
3) 끝 마무리: 긍정적으로
대화의 1단계: Hello, nice too meet you.
대화의 2단계: I like you. It is good to hear your story.
대화의 3단계: Good bye. See you agin. Have a good time.
지금까지 프로그램의 이론을 살펴보았다면,
지난 포스팅에 이어
봄학기 프로그램 참여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작성한 나만의 자서전을 익명으로 소개합니다.
최고의 만남, 최선의 선택 - JE
지난 5월 초 어버이날이 다가오기도 하여 휴가를 내어 친정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마산을 방문하였다. 그 날 저녁 어머니는 자녀 셋이 거실에 모이니 너무나 행복해하며 흥분된 어조로 마음에 담긴 이야기들을 이것저것 풀어내셨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열두 번을 넘어 30번도 더 들어 알고 있지만 가만히 들어 주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70년대에 계 하라고 강요당해 시작했다가 거금을 날렸던 것, 그것을 주도했던 사기꾼 이야기, 시댁에서 받은 유산을 큰아버지가 선거 비용에 쓰느라 다 없앤 것, 6.25 전쟁 중 어머니를 잃고 호랑이 할머니 밑에서 고생한 것, 새어머니로부터 무시당한 것 등의 한 맺힌 내용이다. 언제쯤 저 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들으며 생각했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외할머니가 마당에 떨어진 폭탄 소리에 놀라 임신 9개월에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이었으니 12살의 어린 어머니는 위로받을 길이 없었고 가족 모두가 자기 목숨 부지하기 위해 피란 길에 올랐기에 그 틈에서 울음을 삼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아픔과 상처는 88세가 된 현재까지도 커다란 흔적으로 남아있다. 어머니가 가진 상처는 고스란히 피할 길 없는 소낙비가 되어 우리들 마음을 흠뻑 젖게 했다. 어머니의 격앙된 목소리는 너무나 무서웠고, 순간순간 우리를 긴장과 불안으로 몰아넣고는 했다.
나는 청소년기에 이런 어머니를 보며 내 미래의 삶에 대해 상상하며 불안해하였다. '나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까 우리 엄마처럼 인격이 안 바뀌면 어떡하지? 나를 진정으로 바꾸고 싶은데 왜 나는 이것밖에 되지 못할까? 나는 우울함과 답답함이 가득한 무표정의 얼굴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자신감 없고, 위축되고, 남의 눈치 보는 나 자신이 싫었다. 사람들이 'JE는 장로님 딸이니 착하고 공부도 잘할 거야'하면 그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 불안해하며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고, 똑똑하고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를 바꾸고 싶어! 대학 1학년 가을 학기부터 밥맛을 잃어가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름시름 앓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었고 잘 웃는 것조차 헤퍼 보여서 웃는 모습마저 바꾸고자 애썼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그 기간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의 시선을 피했으며 땅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좀 더 속이 깊은 척, 좀 더 나은 척하면 괜찮아 보일 거라 생각한 것 같다.
나를 바꾸고자 몸부림치며 그렇게 및 개월이 흐르고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경 안에서 새로운 빛을 만난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은 후 가치관이 변하고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영원한 가치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데 그런 걸작품을 바꾸려 했구나' 나를 사랑스런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더불어 타인을 바라볼 때도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보게 되어 더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타인의 평가가 두려운 것은 내 내면의 지식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어서였구나 싶어 출판사 회원에 가입하여 매달 오는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 나가기도 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바라볼 때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지 살아있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그때가 대학 2학년 5월의 첫날 대학 캠퍼스는 춤추며 나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두려움에 떠는 내 모습이 있었다. 나를 매일매일 불안에 떨게 하는 어머니의 큰 소리는 여전하였기에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불호령이 떨어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도 하면서 다그치고 때리기도 하였기에 어머니와의 관계는 하나님께 나가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어머니 바뀌게 해 주세요."
숱하게 기도하던 중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나타난 환상을 보게 되었다. 흑백사진 속에는 1950년 배경의 머리 스타일을 한 초등생 아이가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여자 어른 앞에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4살배기 여자가 역시 울고 있었다. 기도를 마친 후 울고 있던 아이가 12살의 엄마이고, 죽어서 마당에 눈 감고 누워있던 여자 어른이 외할머니구나 생각했다.
이 환상은 내가 상담을 공부하면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성인아이"의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부터 나는 어머니를 상처 입은 12살 아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은 부분에 이해가 되었고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커져갔다.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 시간은 미성숙했던 내가 영성적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일생은 어머니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긴긴 싸움의 시간이었다. '인간이 무엇으로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상처 입은 영혼이 변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고민의 연속이었고 또 그것을 깨닫고 성장해 나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인격이 바뀌는 큰 경험을 했어도 언어가 바뀌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나는 독선적이고 일방적이며 너무나 쉽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어머니의 언어 습관을 그대로 답습하며 가정생활을 했다. 그 안에는 명령, 지시, 강요가 세트로 따라다녔다.
나는 어머니의 대화 방식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좌절하고는 했다. '옳고, 그름'에 치중하여 상대를 판단하며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려했고, 충고나 조언이 많았다. 내가 좋은 충고를 했으니 상대가 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이런 나의 부정적 언어 화법의 가장 큰 희생자는 33년을 함께 산 나의 남편일 것이다. 나는 늘 올바른 것을 말한다고 여겼기에 공감보다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등의, 지시적이고 교훈적 말투를 했다.
내 말에 남편이 화를 내면 그가 문제라고 여겼다. 남편의 감정과 생각을 헤아리기보다 목회자라는 역할 앞에 묶어 두려고 했다. 좋은 말로 시작했다가 원치 않게 갈등으로 대화가 막히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났다. 말은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하였지만, 정작 남편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마음을 읽어주려는 노력은 하지 못했고, 그의 마음을 알지도 못했다. 내 말이 먹히지 않으면 이해시키려고만 노력하였다.
남편은 무려 4년 이상을 혈액암으로 투병하였다. 나는 남편 병실의 쪽침대에서 오랜 기간 새우잠을 자며 그를 간병하였고 오로지 기도와 믿음으로 지탱하였다. 마침내 그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의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거기서 대화의 달인이 되는 훈련을 받고 나니 참으로 가슴이 아려오고 애석한 마음이 든다. 당신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그의 가냘픈 손이라도 어루만져 주면서 "여보 정말로 미안해요"라고 고백했을 텐데.. 그의 눈을 그윽히 응시하면서 그의 힘들었던 이야기와 억울했던 과거사를 끝까지 잘 들어주었을 텐데... 그리고 "당신의 선택이 최고였다"라고 말해주었을 텐데.. 그가 떠나고 난 텅 빈 넓은 침대에서 내 마음속의 울림만 퍼져나간다. 메아리도 없이 그저 길게 길게 여운을 남기는 징소리처럼 퍼져나간다. "여보 미안해요. 여보 정말 미안해요. 여기서 당신은 너무너무 고생했지요. 이제는 그곳에서 기쁘게 즐겁게 지내세요. 여보 사랑해요. 주님 감사합니다."
한 사람의 삶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나온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며,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 인생 다시 피어나기(Blooming Again)」를 통해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참여자분께 감사드립니다.

* 프로그램 신청을 원하시면 아래 사진을 클릭하여 정보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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